삼국지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들은 개개인마다 개성이 있었고 장단점들이 있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유비는 좋은 지도자로 부각되어 있는 반면 조조는 야비하고 속임수에 능한 사람,
난세의 간웅(奸雄)이자 역신(逆臣)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그것은 자신의 슬기로운 꾀를 자랑한 조조에 반해 유비는 늘 그것을 숨기는 입장이었고,
조조의 삶이 공격적이었다면 유비는 대체적으로 방어적인 입장에 서 있었던 면면들이
그 시대의 감정과 봉건적 관념들이 만들어 결과들이 후세에 전해졌기 때문이었다고 보인다.
특히 나관중의 ‘삼국지연의’에서는 권모술수에 능한 악인으로 저평가되었다.
나관중은 당시의 백성들이 가지고 있던 조조에 대한 반감이 들어 있는 전승과 민간 설화 등을 이용하고,
촉한의 인사들을 대부분 우국지사와 충의지사로 묘사함으로써
실제 역사와는 다르게 조조에 대한 부정적 평가를 이끌어 내었다.
그러나 조조는 분명 노련한 장군이었고 현실정치의 좋은 표본이 될 만한 인물임에 틀림이 없다.
당대 최고의 환관 ‘조등’의 양자가 된 ‘조숭’, 조숭의 아들이 바로 ‘조조’였다.
환관의 손자였다는 자신의 출생이 열등의식으로 작용하여
귀족 출신 인사들을 박대하는 경향이 있었으나 그것이 오히려 신분의 차별을 두지 않고
(1) 뛰어난 인재들을 등용시켰다. 그는 ‘구현령’을 공포하여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재능 있는 사람이면 인재로 등용시켰고, ‘술지령’을 공포하여 수여받은 4현 3만 호 가운데 3현 2만 호를 황제에게 반환하고, 제위 찬탈 등 야망이 없다는 사실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조조의 매력은 무엇보다도 그의 (2) 뛰어난 용병술에 있다 할 수 있는데,
어쩌면 ‘제갈량’이나 ‘사마의’ 보다도 한 수 위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가 비록 적벽대전에서 오와 촉 연합군에게 패해 천하 통일을 이루지는 못했으나
뛰어난 용병술을 발휘하여 적은 병력으로 관도대전에서 큰 승리를 이끌었다.
시인이자 정치가였던 ‘두목’(杜牧)은 조조가 손무의 병법 13편에 주석을 달아 후세에 전했다면서
조조의 군사적 재능을 칭찬한 것을 볼 때 그는 군사적 전략가요 뛰어난 용병가였음이 분명하다.
(3) 법을 지킴에 있어 예외 없이 자신이 몸소 모범을 보였으며,
백성들을 위하고 자신의 부하를 끔찍하게 아끼는 덕이 있는 지도자였다.
권력자들이 법 위에 군림하려는 우를 많이 범하고 있는 현실에서,
조조야말로 오늘날 참 지도자의 상이 아닐 수 없다.
농민들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도록 말을 타고 보리밭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하였으나
자신의 말이 보리를 밟았을 때 그것을 부끄럽게 여겨 자신의 목을 자르려 하였고,
참모들의 만류로 자신의 머리카락을 잘랐다고 하는데,
그것을 본 군인들이 다시는 법을 어기지 않았다고 한다.
또한 조조는 자신을 위해 죽은 군인들의 유가족들에게 밭을 나누어줌으로써
생계에 지장이 없도록 배려를 아끼지 않았으니 그 휘하의 부하들은 충성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4) 사사로운 감정에 얽매이지 않았고, 자신을 죽이려고까지 했던 자에게도 관용을 베풀고 기회를 주었다.
배포 있는 도량의 지도자상이다.
역사 이래. 보복정치는 늘 악순환되어 왔다.
조조는 사사로운 감정을 절제함으로써 두 가지의 큰 이득을 얻었는데,
하나는 부족한 자신의 힘을 보충할 수가 있었고,
다른 하나는 크고 작은 그의 아량들이 적들의 마음까지도 움직일 수 있었다.
사랑하는 혈육과 아끼는 부하를 죽이고 자신의 목숨까지 노렸던 장수까지도 용서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지도자는 흔치 않은데, 조조는 그 흔하지 않은 지도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5) 후계자를 잇는 일에도 사심을 갖지 않았고,
자신이 모았던 수많은 재산을 백성들을 위해 몽땅 기부한 지도자였다.
자신이 아끼던 아들 ‘조식’이 아닌 ‘조비’를 후계자로 삼았던 점은 그 시대 비범한 인물됨을 보여주고 있다.
조조가 자신의 재산을 몽땅 백성들을 위해 기부한 일은 조를 섬기던 고위층 신하들에게도 영향을 주어 그들도 가난한 백성들을 위해 자신들의 재산을 나누어주었다고 하니, 한 사람의 지도자가 끼치는 영향력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알 수 있다.
(6) 조조는 군사, 학문, 무예, 내정 모든 면에 있어서도 뛰어난 재능을 가졌을 뿐 아니라, 詩文, 그림, 노래 등 풍류에도 특별하였다. 유비나 손권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뛰어난 문장가이기도 하였으며,
소박한 민요였던 ‘악부’(樂府)를 공식 문학의 한 분야로 정착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도자라고 해서 모든 것을 다 갖추어야 한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풍류를 아는 지도자는 여유가 있고 너그러움이 있다.
희로애락의 감정이 풍부한 지도자야말로 백성들의 마음을 읽을 수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삼국지에 나오는 인물들 가운데 조조에 관심을 갖고 살펴보는 가운데,
비록 1800여 년 전에 살았던 사람이었으나 이 시대에 살았다면 그의 지도력을 훨씬 더 돋보였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완벽한 사람은 없다. 조조에게도 약점과 단점들이 물론 있었다.
조조의 위왕 취임을 반대한 순욱에게 자살을 명했다는 이야기, 자신의 의지에 반대하는 자를 가차 없이 처분했다는 것, 사람을 잘 믿지 않는 의심 많은 성격 등을 결함으로 지적할 수 있다.
조조에 대한 평가는 상대된 의견들이 있다.
치세의 도적이자 난세의 영웅으로 평가하는 이가 있는 반면,
치세의 능신이자 난세의 간웅으로 평가하는 이도 있다. 관점의 차이일 것이다.
진수는 “사사로운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합리적으로 일에 대처했으며, 구악을 염두에 두지 않았다”라고 평가하였다. 분명한 것은, 통솔력이 뛰어나 아랫사람을 감동시키는 데 있어서 타의 추종을 불허했고,
사리사욕이나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당시로서는 파격적으로 인재를 선발했으며,
백성들을 위해 세금을 감면해 주는 등의 좋은 일을 많이 하였던 조조야말로 당대 비범한 인물이었음에 분명하다. 본인이 조조의 인물됨을 살펴보는 가운데,
그의 부정적인 면을 보완할 수만 있다면,
우리 시대에 있어서도 반드시 우리 곁에 있어야 할 지도자라고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