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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운 주제

과거와 현재 한중관계

by 중역문 2022. 4.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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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예나 지금이나 중국이란 나라와

경제적으로나 외교적으로도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를 유지해오고 있다.

 

역사를 돌이켜보면 고구려와 당(唐)나라간의 대립관계가 있었고

시간이 흘러 발해, 고려 등 국가에 이르러서는 교류를 이뤄가게 되었다.

중국 유학을 장려하고, 승려들도 중국으로 유학을 가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원(元)나라에 이르러서는 철저한 사대관계가 형성되고,

명(明)나라가 세워졌을 때는 차츰 유대관계로 관계를 이어나가게 된다.

 

청(淸)나라가 세워졌을 때는 청이 병자호란을 일으키며

조선의 임금이었던 인조가 청나라 황제에게 삼배고구도를 당하게 된다.

이를 삼전도의 굴욕이라고 칭한다.

 

근현대에 들어와서도 중국과의 관계는 계속 이어진다.

일제시대에는 일제라는 공동의 적이 있기 때문에

독립운동가들이 서로 교류하며 친밀한 관계를 가지기도 했다.

특히, 우리나라의 독립운동가들이 중국으로 건너 가서 활동을 하기도 했고

상해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수립하기도 했다.

(실제로 상해에 있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기념관에 가본 적이 있는데,

순국선열의 혼처럼 느껴지는 무언가가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나 1950년 6.25 한국전쟁 때는

중공군이 북한을 지원하면서 다시금 중국과의 적대관계가 되었으며

줄곧 그 관계를 유지해 왔다.

반면에 우리나라는 대만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했다.

참고로 중어중문학과의 교수들도 대부분 대만에서 유학을 한 교수들이 많았다.

그러다 1992년 8월 24일 중국과 수교를 시작하며 외교적인 관계를 가지게 되었다.

 

2000년대에 접어 들어서는

한반도 사드배치로 인한 갈등이나

KADIZ(한국방공식별구역) 침범으로 인한 갈등을 빚고

이러한 갈등으로 중국에서는 금한(禁韓)조치를 내리기도 했다.

 

또한, 김치, 한복 등 한국 고유의 문화를 예속화시키려는 시도를 하기도 하며

2020년 들어서는 코로나-19 바이러스라는 전대미문의 사태로

반중, 반한 감정은 극에 달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동북공정으로 한반도 역사에 대한 예속화를 시도하더니

이제는 문화 동북공정으로 진행되고 있다.


나는 중문학도로서 중국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살짝 맛본 적이 있다.

 

취업을 위한 시도였지만 한국사 시험도 보고,

우리나라 역사에 대한 공부를 한 적도 있다.

 

그래서 더더욱 우리의 역사를 알고

상대의 역사를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초등학생의 신분으로 중국 유학을 하던 시절, 

동급생에게 김치는 파오차이라고 배운 적이 있다.

그래서 나는 파오차이가 김치인줄로만 알았다.

출처: 네이버 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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